조항

번역: 후세인 크르데미리





교정 : 카람 김은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지은이  무쓰타파 말라이카 (Mostafa Malaekah)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리석은 사람은 ‘먹기 위해서’ 살고, 지혜로운 사람은 ‘살기 위해서’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 지혜로운 사람은 무슨 목적을 위해 사는가? 삶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사람은 살아가야 하는 목적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그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무지는 그 경중을 떠나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의 이유나 삶의 목표, 그리고 죽은 뒤 자신의 뒤에 남게 될 결과를 모른다면 그러한 무지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사색가들은 이러한 의문들을 간단한 말로 표현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왜?” 다시 말하자면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물질적인 세계만 믿고 창조주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無神論者)들은 오로지 지각에 의한 자료만을 신뢰한다. 그들에 따르면 우주는 스스로 생겨났다고 한다. 우주의 모든 질서는 단순한 우연의 결과에 불과하며, 사람은 여느 동물 또는 식물과 다를 바 없고, 잠시 동안 이 세상에 머물다가 삶을 끝마치는 존재라는 것이다.





창조주가 존재하며 그분이 인간을 인도하기 위해 예언자들을 우리에게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혼란은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들의 마음의 평온과 안정을 빼앗아 자못 고통을 줄 것이다. 불신자(不信者)들은 자신의 존재의 목적에 대해 진실한 답변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살며, 이 삶의 쾌락을 위해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약 삶이 재미없어지고 그들 자신이 엄청난 고난을 겪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때에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 그리고 삶의 목적을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수가 자살(自殺)을 감행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본의 경우를 보자. WHO(세계보건기구) 발표에 따르면 2006년 일본에서는 총 29,921건의 자살이 발생했다. 하루 82건씩 발생하며, 한 시간에 3명 꼴이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국민들이 의식주(衣食住)와 의료보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본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만약 모래 속에서 시계를 발견했다면?





  무슬림은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에게 말한다. 당신이 사막 한가운데서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어떤 사람이 이 시계를 떨어뜨렸다고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그 시계가 저절로 온 것으로 추정할 것인가? 물론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계가 모래 속에서 스스로 존재하며 스스로 그 모습을 나타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땅속에 묻힌 금속들이 시계 부품들로 만들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계는 반드시 제작자가 있게 마련이고, 만약 그것이 정확한 시간을 표시한다면 우리는 그 시계를 만든 이가 지능적인 사람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단순한 우연으로는 제대로 작동하는 시계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것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생각해 보자. 그 시간이 너무나도 정확하여 전문가들이 먼 앞날까지의 일출과 일몰을 알고 신문에 쓰고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시간들을 관리하는가? 만약 지능적인 제작자 없이 시계가 작동할 수 없다면, 태양은 어찌하여 시계처럼 규칙적으로 뜨고 지기를 반복하는 것일까? 이는 스스로 이루어지는 일인가?





  지구로부터 약 149,600,000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태양은 지구와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생각해 보자. 만약 태양이 좀 더 가까이 다가오면 지구는 불타오르게 된다. 또한 태양이 너무 멀리 떨어지면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얼음 행성으로 변하게 된다. 지금 이 거리가 적당하다고 누가 미리 결정했을까? 그저 우연히 그렇게 되었을까? 태양이 없으면 식물은 자라지 못하고, 동물과 사람은 그 결과로 굶어 죽게 된다. 태양이 우리를 위해 거기에 있기로 그렇게 스스로 결정했을까?





  태양 빛은, 지구 대기(大氣) 속의 오존층이 막아주지 않으면 우리에게 매우 위험한 빛이 된다. 그러나 지구를 둘러싼 대기가 있어 그것이 해로운 자외선(紫外線)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누가 이러한 보호막을 우리 주위에 설치하였는가?





  일출을 보자. 우리는 태양의 에너지와 한낮을 밝혀주는 태양빛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또한 일몰이 필요하다. 뜨거운 열이 지속되어서는 안되며 시원한 밤이 있어야 하며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빛은 꺼져야 한다.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누가 이러한 작용들을 조절하는가?





  태양의 온기와 적절한 기후를 갖추었지만 우리는 거기에 무언가를 추가하고 싶다. 아름다움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마치 옷을 통해 따뜻함을 얻고 피부를 보호할 수 있게 되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보기 좋은 옷을 원하는 것과 같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태양의 출몰을 고안하는 그분은 단순하지만 깜짝 놀랄만한 장관을 연출해낸다.





 우리는 우리에게 빛과 에너지, 보호와 아름다움을 선사해주신 조물주께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들이 사막 한가운데서 정확한 시간과 아름다운 모양의 시계를 발견했다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시계를 만든 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아름다움의 진가를 알고 세련된 지능을 갖춘 시계 제작자의 존재를 부인할 수 있을까? 그분이 바로 우리를 만든 하나님인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신(神)을 믿는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인간이 신(神)을 믿고 경배해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인류학이나 역사학 전문가들의 견해는 일치한다. 그러기에 한 유명한 역사학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역사를 살펴보면 궁전, 공장 또는 요새가 없는 도시들은 있지만 예배 장소가 없는 도시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아주 먼 옛날부터 인간들은 단순히 이 세상의 짧은 삶을 위해 자신이 창조되었을 것이라 믿지 않았으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다른 장소로 갈 것이라 생각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을 살펴보자. 그들은 시신을 미라화(化)한 뒤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어 무덤 속에 죽은 이의 소유였던 보물과 먹고 마실 것을 놓아두었다. 초기의 역사기록들을 보면 (극소수의 예를 제외하고) 인류는 창조주의 존재와 죽음 뒤의 삶이 있음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창조주의 본질에 대해서는 서로의 의견이 다르며, 예배의 방법이나 사후세계의 묘사도 각각 달랐다. 예를 들어 힌두교는 환생(還生)을 믿으며, 사람이 죽은 뒤 그 선악(善惡)의 업보에 따라 영혼이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 들어가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은 한없이 반복되어 마침내 그 영혼이 완벽의 경지에 올라 창조주와 일치될 때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도 역시 죽은 뒤의 삶을 믿지만 힌두교의 윤회(輪廻)와는 다르다. 이 세 종교 모두, 사람이 죽은 뒤 그 영혼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각각 다른 관점을 갖는다.





역사를 통해 모든 민족과 사회가 창조주의 존재를 믿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는, 시대를 초월한 예언자들의 사명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그만두고 유일신이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왜 사람들은 하나님을 외면하였나?





  오늘날의 세계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창조주와 사후 세계를 믿지 않고 있다. 체코공화국에서 2000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단지 13%가 사후세계를, 그리고 17%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된 주요한 원인은 지난 세기에 제기된 다윈(Darwin)의 진화론(進化論) 때문이며, 인민의 신앙을 통제한 전체주의 공산정권의 영향 등 다른 이유들도 포함될 것이다. 진화론은 인간이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은 학문적 또는 과학적 실체를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주장에 의문을 지녔던 사람들에게 강한 지지를 받았다. 놀랄 일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교양 있는 어떤 사람에게 비논리적이며 비합리적인 창조주를 한참 묘사하고 나서 “그분을 하나님으로 믿어라”고 요구한다면, 그는 분명 거절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것이 오늘날 서방국가의 상황이다. 기독교는 삼위일체(三位一體)의 교리를 채택하였고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묘사하시길 그분은 셋이면서도 동시에 동등한 인격체이며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에 내려온 것이 곧 예수이며,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자신을 희생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사람의 모습을 한 하나님 즉 하나님의 화신(化身)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창조주가 죽을 수 있단 말인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인 삼위일체와 예수의 신성(神性), 예수의 성자(聖子)됨, 원죄(原罪)와 속죄(贖罪) 등은 이성적(理性的)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에도 일치되지 않는다. 이러한 교리는 예수 죽음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 원인은 이전에 있었던 우상숭배의 영향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힌두교에서도 삼자관계(삼위일체)라는 것이 있다. 브라마는 창조의 신이고, 비슈누는 보호의 신이며, 시바는 파괴의 신이다. 현대 힌두교에서는 죽은 비슈누가 부활하여, 동정녀 디바치의 아들 크리슈나(Krishna)가 되었다고 믿는다. 크리슈나는 구세주로서, 그들의 죄에 대한 희생으로 고난을 겪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 다시 부활한다. 불교에서도 여러 신이 있다. 고타마(성령), 마야(동정녀)와 그녀의 아들 붓다가 있다. 붓다는 마야가 성령으로 채워짐으로써 그녀의 뱃속에서 잉태되었으며 구세주로서 죽은 후 다시 부활한다. 흥미로운 것은 12월 25일이 예수의 생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날은 힌두교의 크리슈나의 생일이고, 바벨론신의 아들 니므롯의 생일이자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빛의 신이라 불리는 미트라의 생일이다.





  여러 민족의 예언자들에게 계시된 종교는 동일한 것이었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잘못 해석되고 미신과 혼합됨으로써 신비로운 주술과 마법에 의존하는 예배, 그리고 의미 없는 의식으로 타락하였다. 그들 종교에서는, 종교의 진정한 핵심인 하나님의 개념이 다음의 다섯 가지 방법으로 격하되었다.





(1) 신을, 인간의 모습을 한, 필요와 결함이 있는 존재로 만드는 의인화(擬人化)





(2) 사람들의 인격과,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속성을 결합시킴.(예시: 힌두교와 기독교)





(3) 천사들의 신격화 (예시: 힌두교의 데바스(Devas), 조로아스터교의 야자타스(Yazatas), 기독교의 성령)





(4) 예언자의 화신(化神)화(예시: 기독교의 예수, 불교의 부처, 힌두교의 크리슈나와 라마)





(5) 신성(神性)을 인격화한 뒤 특정 존재에게 신성을 부여하는 행위(예시: 기독교 삼위일체의 성부, 성자, 성령, 힌두교의 브라마, 비슈누, 시바, 조로아스터교의 아메샤 스펜타)





  주요 종교들이 신의 유일성과 본질을 왜곡함에 따라 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받는 서구 학생들은 다윈의 진화론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결과 중·고등학생은 물론 대학생들까지 무신론자가 되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비웃기까지 한다. “그들은 어리석거나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켜줄 그 무엇을 필요로 하겠지!”





  필자는 최근 서구의 한 국가에서, 은퇴한 65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무슬림이 마련한 강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시작 부분에서 그 강사는 참석자들에게 “여러분 중에서 누가 하나님을 믿습니까?”라고 물었다. 두 사람을 빼고는 모두 손을 들었다. 강사는 다시 “누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남은 두 노인이 손을 들었다. 그 중 한사람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강사에게 반문하였다. “선생님이 말하는 하나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해주어야 우리가 대답할 수 있지 않겠소.” 행사가 끝난 뒤 나는 그 강사에게 말했다. “아까 그 사람은 지성을 갖춘 사람입니다. 처음에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했을 때 그 하나님은 아마도 기독교의 개념에 의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 뒤 그는 좀 더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였고 무슬림이 제시하는 하나님의 개념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왜 창조되었나?





  창조주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의 질문에 대해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기에 우리가 존재하고, 죽음 뒤에는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창조되었나?”라는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만약 우리가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면 우리를 창조한 목적에 대해 말해주기를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창조주는 최후의 날에 어떠한 기준으로 우리를 심판할 것인가를 말해주지 않을까?


 이슬람의 견해는 무엇인가?





  무슬림들이 말하길, 꾸란이 있기에 우리가 왜 창조되었는가에 대해 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저마다의 경전을 가지고 있는데 꾸란에 무슨 특별한 내용이라도 있단 말인가? 기본적으로 꾸란은 신앙, 경배행위, 도덕, 사회생활을 지배하는 법률 등 인간의 감각이나 지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책이다. 이 네 가지 이슬람의 기본 바탕은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를 필요로 하는 영역이다. 무슬림들은 꾸란이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계시한 성서라고 믿는다.





  꾸란은 하나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여 23년 동안(서기 610-633년) 그분의 말을 여러 차례로 나누어 한 구절씩 또는 여러 구절씩을 예언자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기를)에게 전달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모두 114장으로 이루어졌으며, 각 장(章)을 ‘수라(surah)’라고 부른다. 예언자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기를)는 그에게 계시되는 내용들을 즉각적이고,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하여 필사(筆寫)를 담당하는 서기들을 두고 있었다. 서기들은 양피지(羊皮紙)나 도기(陶器), 대추야자 잎이나 평평한 돌, 나무껍질과 판목(版木), 말린 동물가죽, 심지어 양이나 낙타의 어깨뼈 등을 이용하여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계시된 구절들은 사람들에 의해 암기되었는데, 단순히 꾸란을 낭송하기만 해도 그 자체가 경배의 행위로 인정된다. 무슬림들은 또한 이러한 꾸란 구절들을 재판의 준거로 삼으며 하루 다섯 번 예배마다 빠짐없이 그 구절들을 암송한다. 이 같이 꾸란의 구절들은 예언자 생존시에 잘 기록되었음은 물론 무슬림들의 마음속에서도 잘 보전되었고, 예언자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기를)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새로운 구절들을 어느 장에 배치할 것인가를 지시받았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각 장의 이름이 정해졌으며, 예언자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기를)는 그의 생애 마지막 해에 가브리엘 앞에서 전체 꾸란을 1회 이상 낭송하여 최종점검을 받았다. 꾸란은 어떠한 계시록보다도 신빙성을 자랑하며, 이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꾸란의 위엄을 잘 알고 있으며 그에 걸맞게 꾸란을 소중히 다루고 있다. 예언자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기를) 당시에 이미 많은 수의 무슬림들이 꾸란을 암송하고 있었다.





  예언자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기를)의 사후 첫 번째 칼리파(caliph)가 된 아부 바크르(Abu Bakr)는 초창기 서기들 중의 한 사람인 자이드 이븐 싸비트(Zaid ibn Thaabit)에게 계시된 꾸란의 필사 원본을 한 데 모으고 전체 꾸란을 다시 쓰게 하는 임무를 맡겼다. 자이드는 가죽을 이용하여 전체 꾸란의 필사본 한 부를 완성했는데 그 정리된 순서는 오늘날과 똑같다. 아부 바크르는 채 2년을 통치하지 못했으므로 예언자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기를) 사후 2년 이내에 이 사본의 제작이 마무리 되었다고 본다. 이 사본은 제2대 칼리파 우마르에게 맡겨졌고, 다시 제3대 칼리프인 우쓰만에게 위탁되었다. 우쓰만 통치기간에 아랍 사람들은 중국의 제지산업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우쓰만은 자이드에게 요청하여 네 사람으로 구성된 꾸란 학자 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일곱 벌의 사본을 새로 제작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예언자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기를) 사후 14년에 완성된 일곱 사본들은 무슬림 국가들의 중심지에 배분되어 각 지역 사본 제작 사업의 표준으로 삼게 했다. 그 중에서 최소한 세 개의 꾸란 원본이 오늘날 타시켄트와 이스탄불, 그리고 카이로에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그 원본들이 오늘날 무슬림들이 사용하고 있는 꾸란과 한 획도 틀리지 않다는 것은 이슬람의 기적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성서인 꾸란의 진실성 그것 자체로도 기적이 되기에 충분하다. 꾸란은, 계시된 언어 그대로 글자 하나 낱말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인류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책이다. 그러한 이유로 꾸란은 유일무이하며, 이처럼 완벽한 원본 보존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것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전달된 창조주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은 예언자 모세와 다윗, 그리고 예수에게 주어진 진정한 원래의 계시서가 있었음을 믿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계시서들은 현재 모두 변질되었으며 처음 계시에 사용되었던 원본 언어 역시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꾸란은, 그 신성의 순수함을 유지한 채 유일무이하게 남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또한 꾸란은 산문도 시도 아니기 때문에 여타 인간의 저작물과는 다르다. 아랍인들은 그들의 수사법(修辭法)이 최고조로 발달했을 때 꾸란 한 장을 만들어 보려고 시도했으며, 혹은 그 비슷한 것을 만들거나 열 장 또는 책 한 권을 만들어 보려고도 시도했다. 이러한 도전은 오늘날에도 시도되지만 성공한 사람은 결코 찾아 볼 수 없다.





  초기의 학자들은 꾸란의 불가사의한 특징이 주로 그 독특한 문체(文體)와 아름다운 어법(語法) 때문인 것으로 생각했다. 어법의 아름다움은 실로 독특하여 인간의 저작물과는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초기 꾸란 주석자(註釋者)들이 수사법과 문체에 집중했던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꾸란은 창조주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것이 다루고 있는 그 어떤 영역도 독특함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꾸란에 드러난 법학(法學)을 보면 그 독특함을 느낄 수 있으며, 경배방식에 관하여 꾸란은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꾸란에서 하나님과 예언자의 지위, 그리고 도덕성의 개념들은 모두 독특하다. 만약 우리가 꾸란에서 서술한 이전 민족들의 역사를 차례로 살펴보게 되면,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으며, 이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어떠했고, 그에 따른 보상과 처벌은 어떠했는지, 기록 매체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그 당시의 일을 상세히 적고 있다. 꾸란은 이렇게 면밀히 계속되는 민족들을 단 하나의 실수도 없이 설명하고 있는데, 현대의 고고학적 발견들은 이를 잘 입증하고 있다.


 ‘꾸란’은 신뢰할 수 있는가?





  종교적인 가르침 이외에도 꾸란에서 다루고 있는 우주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은 그 수만도 수백 구절에 이른다. 꾸란은, 지구와 태양, 달과 별, 산맥과 바람, 흐르는 물, 식물과 동물 등 우주의 구성 요소와 각종 현상들, 그리고 인간의 계속되는 발전 단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우주에 대한 사실과 그 현상에 관련한 꾸란 구절은 1천개가 넘는다. 꾸란이 계시된 초기에는 우주에 관한 과학적 지식이 매우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주 또는 그 현상과 관련된 구절들을 상세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때보다도 우주의 법칙들을 잘 알게 되었고 우주와 사람, 그리고 그 주변 환경에 관한 1천여개의 구절은 꾸란의 가장 명백한 기적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14세기 전에 계시된 꾸란이 그 당시 사람들이 전혀 알 수 없는 수많은 과학적 사실들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꾸란은 이러한 사실들을 묘사함에 있어 그 어떤 과학자보다도 정밀하고 정확하며 간명한 언어를 사용했다. 꾸란의 어느 구절도 과학적으로 이미 확증된 진실과 모순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이 작은 책자에서 모두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필자는 단지 다섯 구절만을 골라 꾸란의 기적을 과학적 관점으로 증명하고자 한다.





  1) 우주의 창조를 설명하기 위해 천체 물리학자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소위 ‘빅뱅(Big Bang)’ 이론을 받아들였으며, 천문학자 등 과학자들이 수 십 년간 수집한 관측 보고자료와 실험자료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처음에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 즉 성운(星雲)으로 존재했다가 마침내 ‘빅뱅’이라는 두 번째 분열이 일어나 은하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 후 나뉘어져 별과 행성들, 그리고 해와 달이 되었다. 우주의 기원은 그 유례가 없는 독특한 것이며, 우연에 의해 그것이 형성했을 가능성은 제로이다. 꾸란은 우주의 기원에 관한 다음과 같은 구절의 내용을 담고 있다.





“불신자들은 하늘들과 땅이 과거에 한 덩어리였음을 알지 못하는가? 그 후 나는 그 둘을 분리하였도다. 그리고 나는 물로써 살아있는 모든 것을 만들었도다. 그럼에도 그들은 믿지 않는가?” (성꾸란 21장 30절)





  꾸란 구절과 ‘빅뱅’ 현상의 뚜렷한 일치는 너무나 확연하다. 1,400년 전 아라비아 사막에 처음 나타난 책에 이렇게 풍부한 과학적 진실이 담겨있는 것은 어찌 된 일인가?





  2) 1925년 미국의 천문학자 허블(Edwin Hubble)은 모든 은하계 별들이 서로 멀어지고 있으며, 이것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면서 이에 관한 관측증거들을 제시했다. 우주의 팽창은 오늘날 이미 과학적 사실로 확립되었고, 그것은 꾸란에서 언급한 우주 형성에 관해 내용 그대로이다.





"그리고 하늘은, 내가 그것을 힘으로써 세웠으며 진실로 나는 팽창시키는 자라. " (성꾸란 51장 47절)





  호킹(Stephen Hawking)은 그의 저서 ‘시간의 역사’에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20세기의 위대한 지적 혁명 중의 하나”라고 표현했다. 꾸란은 사람들이 망원경을 만들기도 전에 이미 우주의 팽창을 언급했던 것이다.





  3) 과학자들은 우주 속의 은하계가 형성되기 전에 있었던 천체의 물질들은 처음에는 가스 형태로 존재했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 거대한 가스 물질 또는 구름들이 은하계 형성 이전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최초의 천체물질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가스(gas)’보다 ‘연기(smoke)’라는 단어가 보다 적절하다. 다음의 꾸란 구절은 ‘연기’를 뜻하는 ‘두칸(dukhān)’이라는 단어로 이러한 우주의 상태를 언급하고 있다.





 “그 후 그분께서는 연기 상태인 하늘 위로 오르셨고...” (성꾸란 41장 11절)





이러한 사실은 ‘빅뱅’의 당연한 결과이지만 예언자 무함마드(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기를) 시절의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일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러한 지식의 원천은 무엇인가?





  4) 과거에는 감각이나 고통의 느낌이 오로지 두뇌에 의존한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의 여러 발견들로 확증된 사실은, 고통의 수용기(受容器)는 피부에 존재하며, 그것 없이는 사람이 고통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사가 화상(火傷)을 입은 환자의 등급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핀으로 콕콕 찌르는 방법이 사용된다. 만약 그 환자가 고통을 느낀다면 의사는 안심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화상이 표피(表皮)만을 상하게 하는 데 그쳤고 따라서 고통 수용기가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환자가 콕콕 찌르는 고통을 전혀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화상이 아주 깊어 고통 수용기 역시 파괴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꾸란은 고통 수용기의 존재를 다음의 구절에서 암시하고 있다.